2022. 1. 5. 13:26ㆍ주관 리포트
마가복음에 보면, 가장 큰 계명에 대해 묻는 바리세인이 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줄이자면), 그는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얘기해주신다.
그 당시 적대시하던 사마리아인이, 강도에게 당한 유대인을 구해주고, 보살펴주는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누가 이웃이냐고 물으신다.
바리세인은, 다치고 빼앗긴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이라 답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라는 대답을 하신다.
아니 잠깐만요. 이웃이 누구냐니까,
너도 이야기속의 이웃처럼 선을 행하라니...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바리세인은, 아마도 사랑받을만한 존재를 '지정'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율법에 능하고, 지키는데에 아주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는, 그렇게 '정해져 있는 대상'에게
사랑을 배풀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의미에서 사랑의 대상은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다.
더불어, 그 당시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을,
바리세인 스스로 '이웃'이라는 명칭을 붙일수밖에 없도록 이야기를 만드시고는,
사마리아인이 행한것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선을 행한 사람에 한정해서 '이웃'이라고 정의내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1) 신(귀신 같은 일반적인 영이 아닌 절대적인 권능이 있는)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 다음으로, 주변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2)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사랑하자.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랑은 호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돈, 걱정, 여러 억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지닐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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