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8. 08:46ㆍ주관 리포트
기독교가 전하는
'예수'라는 존재를 계속해서 믿기로 한
이유(믿으려 노력하는 이유)
* 믿는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라 얘긴 하지만. 작은 믿음이 커지도록 요구하고, 노력하는 이유.
저자는 모태신앙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수라는 존재가 '영웅'처럼 다가왔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존경스러운 존재였죠.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내가 알고 이해하는 지식 밖의 내용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대화와, 기독교 변증학 등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 질문들을 받았고, 읽은 내용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면서 답을 찾아보려 애썼습니다.
부모님께서 목숨을 걸고 '예수'라는 존재를 타 국가에서 전하고 있는 '선교사'였기 때문이 있을까요.
수 많은 무지한 질문을 받고, 예수가 전한 인간의 '도'를 살아내기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저 쉽게 그들이 믿는 예수라는 청년과, 그가 전했던 '가치'들을 쉽게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던 언더우드 선교사나,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고문을 받아 순교당한 손양원 목사,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과 함께, 어떤 소망도 없던 불모지에서, 땅굴 아래서, 콜로세움에서 진정한 빵과 소망을 전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던, 그 외에도 수많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지임을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고민해보고,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역사가 이렇게 흘렀을까. 왜 그 당시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을까. 과연 예수의 제자들은 미쳤기 때문에, 죽어 없어진 스승에 대한 사실을 전하다가 고문당하고 죽었던걸까.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죽였던 사울은, 왜 자신이 잡아 죽이던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전하다 죽었을까..
사실을 검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사실의 내용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실을 대조하여, 사실에 가까운 검증을 하고싶었습니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예수의 실존과, 죽음은 제쳐두고, 성경에서 시사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는 내용에 대한 검증은…
저에게는 그 정도 사실검증을 진행할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있지 않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를 믿음의 타당성, 유익함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많은 의심과 고민 끝에 예수를 믿기로 결정하게 된 여러 요소들 중, 핵심을 짚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신과 타인을 깊이 들여다보고, 인간에 대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뉴스만 보아도, 사람들의 악의(Malevolence)에 대해 관찰 할 수 있지만, 나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범죄는 정말 찰나에 일어납니다. 약간의 상황적, 감정적 틀어짐으로 인해 우리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죠. 그렇기에 누구든지 자신을 돌아보며 행동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선하지 않습니다. 범죄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우리도 하기도 하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단지, 범죄로 인식되는 그 정도 선까지 도달하지 않았을 뿐입니다(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촉매가 되어, 실수를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우린 모두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도덕적 교육으로 인한 양심이 존재하고, 최대한 서로의 손실을 예방하기 위한 법적 테두리, 사회적 경계가 있기에 우린 내적, 외적 행동의 통제를 받고있었기에, 악의가 우리를 집어 삼키도록 두지 않는 것이었죠.
나 자신의 동기와 실수, 부족함을 들여다보니 나란 존재는 참으로 악했습니다. 세상에 득이 될 것 같지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진실’이라는 어둠 속에서 헤맬 수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바로 옆에 저에게는 ‘예수’라는 존재가 있었죠.
2.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예수가 선하며, 인간이자 신이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구원할 능력과 권위), 구원자임을 마음으로 믿고(구원해주는 대상), 입으로 시인하면(목에 칼이 들어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는 상황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고,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카락 수를 알고있을 만큼 사랑하며, 영원한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의 내적 동기를 들여다보며 발견한 사실과 일치되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죠.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부분에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선해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고, 삐끗하면 오만에 빠지거나 자신을 신처럼 여기며, 권력을 남용하고, 신처럼 대우받고 통제하기 원하는 것이 신이 없다고 결론지은 사람의 당연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접하게 된 '예수와 그가 전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 이제 선택해야 했습니다.
양측 모든 입장에서 충분한 근거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믿는다고, 또는 믿지 않는다고 어느 한쪽이 비과학적이거나, 지금까지 발견되고 연구된 내용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었죠.
그저 선택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예수와 그와 관련된 의문점(기적과 같은)에 대해 저도 당연히 의문을 가졌었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를 반복하며 저는 해당 내용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제대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를 믿음으로 사람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와 결과, 그리고 믿지 않을 경우 유지되는 현상과 결과를 보고(믿음의 열매라고 하겠다) 믿을지 말지를 결정하는게 합리적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았을 경우의 열매(개인, 타인, 사회에 대한 개인적 태도/행동/가치관의 변화로 인한 행동의 결과)를 믿을지, 불신할지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예수의 실존 유무와, 빌라도에 의한 고난, 십자가 처형, 돌무덤에 안착된 시신은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내용들인데요. 거기에 대한 의문은 세종대왕의 실존 유무와 그가 행한 업적들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죠(오히려,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문헌들이 더 부족한 것이 현실).
하지만, 예수의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 믿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따르는, 어느정도 맥락적 근거는 있지만, 아직은 믿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뭘 믿든지, 그 믿는 대상에 따라 '가치'에 대한 의미와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되는데요.
구약시대에 보면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각 신들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사람들이 그 신을 섬기고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이죠. 예를 들면, 바알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풍요를 꿈꾸며, 섹스를 통해 신의 성욕을 증진시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 믿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섹스는 신을 숭배하는 방법이었고, 그들의 예배는 섹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몰렉(열왕기하 23:10 요시야왕은 또 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혀 아무도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몰렉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 못하게 하였으며)이라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를 불에 태워 죽이는 것으로 신을 섬기고, 예배했었습니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여줍니다. 재물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은 '마몬'이라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들의 예배, 즉 해당 가치를 존중하는 방법은 투자이며, 소비나 Flex가 해당 가치로 여겨질 수가 있는 것이죠.
좋아하는 가수나, 아이돌의 경우에는 티켓이나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하나의 방법이듯이 말입니다.
예수는 율법 중 가장 큰 율법이 하나님을 내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가르쳤고, 이 둘은 같은 내용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공감되는 내용인데요. 다른 사람들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보기만나 해도 정말 많은 범죄들이 예방 될텐데,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더 많은 악의적인 행동과 태도가 사그라들 수 있을까요..
예수와 그가 전한 가치를 믿었을 때, 저는 세상을 이전과 같이 바라 볼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었을 때에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타인, 즉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며(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통해 최대한의 유익한 가치를 펼쳐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행동과 동기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감찰되며, 그에 따라 책임을 지고 결과를 얻는다는 전제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죠.
이렇게, 예수를 믿음으로 나는 개인의 올바른 성장과, 사회의 유익한 진보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아래와 같았는데요.
성경을 제대로 읽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야훼라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을 섬기고,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방법, 즉 예배는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성경의 야훼 하나님은, 물론 시간과 재물에 대한 헌신의 요구도 있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공의'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묵살당하거나,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부당하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었죠.
성경에도 죄로인해 다른 왕국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방법은 금식이나, 재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기록된 내용이 있죠.
성경이 말하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절대적인 신은(성경에는 여러 신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귀신도 그들 중 하나이죠),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신을 섬기며 땅에서 공평하게, 누릴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절대자였습니다.
이렇게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종교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요. 모든 종교가 ‘선행’을 강조하기 때문이죠. 열매가 같지 않나..? 그렇다면 어떤 종교든 상관이 없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은 그 ‘동기’가 달랐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고 마치, 자신이 또 다른 신처럼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거나, 보이는 형상의 신을 상징적인 의미로 만들고 그 앞에 절을 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그저 인간이며, 절대적이며 인간이 경외해야 할 절재자는 오직 유일한 하나의 존재라는 확실하고, 모든 인류가 평등할 수 있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고 정말 절대자 같은 신을 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4. 나의 '의'인가, 예수의 '의'인가?
다른 종교들은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완전해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오직 기독교만이 예수라는 존재를 개입시키며, 성령의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존재는 도덕적 교만과 우월함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데요, 타인을 더욱 긍휼 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듦과 동시에 악의를 경계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선한 행위에 대한 동기가 무엇인가의 질문에서 저는 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동기라고 생각했습니다.
1) 나의 의를 드러내고, 내가 신이 되기 위함인가.
2) 신을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 신을 존중하기 위함인가.
예수를 믿으면 선행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 됩니다.
내가 행하고, 무언가를 되돌려 받아야 하는 ‘베푼’ 무언가가 아니란 것이죠(물론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선행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선을 행하면 교만해지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그 동기가 그저 사람들의 칭송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말이죠. 하지만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면 그런 요소가 차단됩니다.
여튼, 이런 여러가지 단계와 생각들을 거쳐서 저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5.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장 사람답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예수와 그에 대한 내용을 믿음으로(교회 들락날락하거나, 예배 참석해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과 별개로 정말 그 내용을 믿느냐 마느냐)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책임감있는, 당당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성경의 내용들은 불편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우리에게 모두 유익한 내용들입니다.
인간의 추악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통해 변화 될 수 있으며 소망과 사랑을 품고 실천하며 살아 갈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권은 동등하고, 신격화된 인간은 없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안정적이고 구조적인 사회를 유지 할 수 있는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리가 아직 덜된 부분도 있고, 내용이 길었지만 저는 위와 같은 이유로 예수를 계속믿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인류에 득이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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